이혼도, 별거도, 졸혼도 아닌 휴혼(休婚) 정서적인 부부 관계는 유지하되 삶의 공간만 분리하는 새로운 가족상의 실험 “거의 3주에 걸친 공방 끝에 내가 집에서 나가고, 시부모님이 남편과 합가하여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정 났다. (……) 아이는 언제든 만나거나 데리고 있을 수 있으며, 이혼은 생각하지 말고 따로 살아볼 것. 각자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서로 이성 문제는 만들지 말 것. 떨어져 있는 동안 상대방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으로 보낼 것. 이 합의가 이루어진 날, 남편과 나는 맥주를 마셨다.” _p47 「결혼-=?」 중에서 배우자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같은 공간 안에서 지겹도록 부딪힌다면. 가부장제 가족상이 과연 현대에도 유효한 것인지 의심하는 시선들 속에, 정서적인 관계는 유지하되 생활만 분리하는 부부 관계에 대한 실험을 생생하게 담은 에세이 《나는 지금 휴혼 중입니다》(은행나무 刊)가 출간되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네 살배기 아들의 양육을 전담하던 저자 박시현은 육아와 살림에 관한 기대치가 높은 남편과 갈등 끝에 결혼 5년차인 2017년 가을, 헤어지지 않기 위해 따로 살기로 했다. 저자가 월세방을 얻어 나가 생활비를 직접 벌어 살고, 아이는 수요일 밤과 주말에 데려와 함께 보내는 식이다. 별거와 다른 점은 “이성 문제는 만들지 말”(47쪽)고 “기능적, 정서적인 관계”(50쪽)를 유지한다는 데 있다. 즉 부부 간의 애정과 부모로서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채 단순히 삶의 공간만 분리하는 것이다. 서구에서 LAT(Living Apart Together)라 불리는 생활양식을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 팀 버튼과 헬레나 보넘 카터와 같이 LAT의 사례로 손꼽히는 서구 커플들의 선택이 각자 단단한 경제적인 토대 아래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기 위해 내린 ‘합리적’인 것이었다면, 저자 부부의 결정은 가부장제의 그늘 아래 양육을 전담하며 자연스레 ‘경력 단절 여성’이 되어야 했던 저자의 독립이 우선적으로 필요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담한 도전이 된다. ‘남편’과 ‘아내’, ‘엄마’와 ‘아빠’라는 역할 속에서 서로를 또 스스로를 잊어가던 두 사람은 휴혼의 과정 속에서 사회에 무사히 복귀하고, 생활에 지쳐 잊어가던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연애 시절 매혹되었던 연인의 본모습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결혼 전 기대했던 바와 다른 현재에 지친 기혼자들에게 대리만족과 발칙한 상상을, 결혼 후의 관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있는 미혼자들에게는 무엇이든 방법은 있으니 겁먹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안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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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 216 p. ; 21 c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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